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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가 복음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
1. 루가 복음의 구성
전체 구절
부분 내용
전체 구성
1, 1 - 1, 4
기록의 필요성 알림
복음서와 사도 행전
전체의 서언
1, 5 - 2, 52
3, 1 - 3, 20
3, 23 - 3, 38
4, 1 - 4, 13
예수의 유년 서사
세례자 요한 이야기
예수의 계보
유혹
공생활의 준비 부분
4, 14 - 6, 19
6, 20 - 6, 49
7, 1 - 9, 50
나자렛 회당에서의 전도
평지 설교
여러 가지 기적 사화
갈릴래아에서의 전도:
공생활의 첫째 부분
9, 51 - 19,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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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45 - 21, 38
22, 1 - 24, 53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예수:
길을 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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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안에서 가르치시는 예수
예수의 수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
공생활의 둘째 부분
사도 행전의 구성
1 - 5장 : 초기 교회의 생활
6 - 12장 : 유다와 사마리아에서 베드로와 필립보 등의 활동, 교회의 발전상
13 - 18장 : 바울로 사도의 전도 여행
루가 복음서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루가 저자가 왜 사도행전을 함께 기술하였는가를 먼저 이해하여야 한다. 그 이해의 실마리는 찾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공관 복음서의 구원사관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2. 각 복음서의 구원사관에 대한 비교 이해
① 마르코 복음의 구원사관: 이 복음서는 초기 교회의 구원사관을 반영한 것으로 예수 시대를 준비하던 구약의 시기, 지상에서의 예수 시대, 또 예수의 죽음과 부활 후 재림까지의 짧은 기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② 마태오 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달리 구약의 성취로서 예수를 보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의아하게 보일 정도로 구약이 예수 시대의 준비기간임을 강조한다. 예수 입성에서도 예언서의 성취로서의 예수 입성을 강조하기 위해, 예수께서 두 마리의 당나귀를 타고 오신 듯 기록하고 있다(마태 21, 1-11: 이사 62, 11: 시편 118, 25-26 참조). 이 복음서는 마르코보다 15-20년 후의 작품이기에 예수의 재림설도 초기 교회의 긴박함을 가진 사상과 달리 다소 막연한 재림설로 변하였다(마태 25, 1-13: 열처녀의 비유 -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든다. 그러니 항상 깨어 있어라”).
③ 마르코나 마태오와 달리 루가는 공관복음 사가 중 유일하게 구원사를 3단계로 구분하여 예수의 시대를 준비하는 구약의 시기, 예수 시대, 교회의 시대로 설명한다. 루가는 구원사를 이런 관점에서 보았기에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에 이어 교회의 시기를 말하는 사도행전을 썼던 것이다. 루가 복음은 마태오보다 늦게 기록된 것이기에 예수의 재림에 대한 생각이 중심에 있지 않고 거리가 멀게 여겼다. 그러나 한편으로 어떻게 하면 그 오랜 세월 동안 교회가 충실하게 머물 수 있는가라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였다. 루가 18장 8절의 ‘과부와 재판관’ 이야기에서 말하듯 “그분이 다시 오실 때 과연 믿음을 찾을 것인가”라는 물음이 던져지고 있다.
3. 루가 복음서의 전체적 구조
루가 복음에 대한 접근 방법은 전체적인 구성을 먼저 보고 사도행전까지 덧붙여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1, 1-4: 복음서와 사도행전 전체의 서언에 해당되는 것으로, 여기서 루가가 밝히는 것은, 자신이 직접 보고 체험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직접 보고 체험한 사람들의 증언을 전해 받아 기록한다고 간단히 말한다.
㈁ 1, 5 - 2, 52: 예수의 유년사로서 예수란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을 단순히 기록의 형태인 예수의 전기가 아니라, 예수의 의미를 밝히는 부분이다: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 → 예수 탄생 예고 →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 세례자 요한, 예수의 탄생 → 예수의 성전 봉헌, 유년시절 이야기
㈂ 3, 1 - 4, 15: 예수 생애의 제1부에 해당하는 공생활의 준비 부분과 갈릴래아에서의 활동을 설명한다. 공생활의 입문 부분에는 네 가지의 이야기, 즉 세례자 요한에 관한 이야기, 예수 자신의 세례, 예수의 족보, 유혹 이야기가 하나로 묶여 있다.
㈃ 4, 16-30: 나자렛 회당에서의 복음선포는 예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예수는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서의 “하느님의 영이 나에게 내려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 묶인 사람들에게 해방을 알려주고...”(루가 4, 18; 이사 61, 1-2)라고 읽었는데 그로 인해 엄청난 반동이 일어났다. 이 말씀은 앞으로 예수께서 하실 일생의 일에 대한 당신의 계획을 피력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루가 복음의 나머지 부분과 사도행전 전체가 이 서두에 밝혀진 의도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 이사 61,1-2과 루까 4,18-19의 본문 분석
이사 61, 1-2
루가 4, 18-19
*(루가와 같음)
1) 주님의 영이 내게
*
2) 과연 주님이 기름을 부으셨도다
3) 주님이 나를 보내셨으니,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4)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사로잡힌 이들에게 해방을
6) 갇힌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5) 눈먼 이들에게 눈뜰 것을 선포하며
7) 억눌린 이들을 풀어 보내고
9) 우리 하느님의 응보의 날을 선포하고
8)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10) 슬퍼하는 이들을 모두 위로하게 하셨다
1) 영이 내린다는 것은 예수께서 성령으로 가득찬 분이시라는 것이며 예수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역동성을 가리킨다.
2) 구약에서 왕을 축성하기 위해 기름을 붓는 것을 의미하며(1사무 16,1-13) 여기서 메시아라는 의미가 파생된다.
3)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나를 보내셨다"라는 의미는 성령의 도유를 통한 예수의 파견을 의미하는 것으로 예수 자신의 자기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4) 루가 복음에서는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도록"이라는 구절이 생략되어 있다.
5) 루가 복음의 “눈먼 이들에게 눈뜰 것을 선포하며”라는 의미는 LXX역본을 따른 해석으로 히브리 원문에선 “구속된 이들에게 열림을”라고 되어 있기에 해석이 상이하다. 그 이유는 해석상의 어려움으로 그 내용을 바꿀 수도 있지만 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시력의 회복을 단지 외적인 치유 차원이 아닌 예수를 통한 완전한 치유 즉 완전한 해방을 갖도록 한다는 것이다.
6) - 8) ‘주님의 은총의 해’ 즉 희년 선포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공적으로 알린느 것이며, 바로 그분이 사람과 피조물에게 은총을 주는 분이시면서도 은총의 대상임을 알린다.
루가 4,18-19은 예수의 공생활 초기, 나자렛 회당에서 예수의 소개 장면을 설명하고 있다. 이 구절에서 예수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복음)을 전하도록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은 그리스도로서 이사 61,1-2의 예언을 성취하고 실현시키는 분으로 묘사되고 있다. 사실 예수는 이미 성령으로 인해 잉태되었고(루가 1,35), 성령의 활동을 통해 엘리사벳과(루가 1,41) 시메온(루가 2,25-26)에게 알려졌고, 세례 순간에 성령을 통해 축성되었고(루가 3,22), 광야의 유혹 순간에도 성령에 의해 인도되었다(루가 4,1.14). 이 사실은 아버지 하느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임무인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 즉 예수의 복음선포 활동이 성령으로 인해 보장받고 있다는 것을 확증해 주고 있다. 하느님 현존의 역동성을 의미하는 성령의 현존은 예수와 초기 원시 교회 공동체의 관계 및 연속성을 보장해 주는 사도행전에서도 잘 제시되고 있다.
루가 복음의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라는 말의 주체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어 그 분이 성령을 통한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한다는 것이다. 루가 복음 저자는 성령이 예수에게 머문다는 1인칭 화법(주님의 영이 내게 내린다)과 성령의 도유를 통해, 제3이사야서에서 언급된 인물을 예수와 동일화시키면서 예수에게서 예언적 약속이 성취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즉 이사 61,1-2의 내용은 참혹했던 바빌론 유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다인들에게 더 이상의 고통과 시온에 대한 약속의 좌절이 없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위로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으며, 이를 인용하고 있는 루가 4,18-19과 마태 5,4의 진복선언이 암시하고 있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약속이 기름 부음 받은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실현되고 있음을 상기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루가 복음의 저자가 “복음을 선포하다”를 이사야서에서 발췌해 사용한다고 해서 루가가 이사야서에 문학적인 의존성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루가는 이 용어로부터 중요하고도 새로운 신학적인 의미를 유추 해석하고 있다. 예수의 인격 및 부활 빠스카 사건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의 기쁜 소식이 성취되고 있다는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예수께서 파견되신 목적은 하느님의 구원을 선포하는 데 있으며, 나자렛 회당에서 선포하는 그 행위 안에서 이미 예언자 이사야의 말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복음을)선포하다”라는 동사의 목적어는 명확히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내용상 그 목적어는 선포의 대상인 가난한 이들, 갇힌 이들, 소경들, 억눌린 이들에게 가져다 줄 구원의 기쁜 소식인 것이다. 복음 선포의 내용인 전해야 할 메시지는 "기쁜" 것으로, 그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며, 메시아로 기름 부음 받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실현될 것이고,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악한 세력(죄와 죽음)에서 해방시켜주며, 가난한 이들의 현실을 변화시켜 줄 수 있기 때문이다(루가4,18-19).
루가 4, 20-30은 회당에서 예수 자신이 구원의 메시아인 복음의 주체이며 객체라는 것을 드러낸 다음,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라는 말씀을 힘 있게 하였고, 이에 대한 군중들의 반응(스켄달)을 설명한다.
㈄ 4, 31-9, 50: 예수께서 공생활의 시작부터 갈릴래아를 중심으로 당시의 길을 가는 움직임을 잘 설명하고 있다. 즉 예수께서 갈릴래아의 여러 마을을 다닐 때도 항상 새로운 마을로 갔지 되돌아서 한 번 갔던 곳으로 다시 갔다는 이야기는 없다. 이런 식으로 루가는 예수님의 생애가 길을 가는 생애라는 인상을 심어 주며, 예수 공생활의 둘째 부분으로 이어지는 루가 9, 51절(“예수께서 하늘에 오르실 날이 가까워지자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을 정했다”)의 전환에서 그 길의 목적지인 예루살렘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 9, 51-19, 44: 공생활의 둘째 부분인 이 내용들은 ‘길 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해 흔들림 없이, 한결같이 걸음을 옮기면서, 그 길을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당신과 함께 길을 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조금씩 조금씩(시나브로) 깨닫게 한다.
이 길은 예수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앞에 가면 뒤따라서 사람들이 가는 길이다. 루가는 이 여정에서 예수께서 앞장 서 간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예수께서 자기를 따른 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제자들에게 가르친다는 것(그리스도교 형성을 위한 공동체양성)을 말하고 있다.
㈆ 19, 45-21, 38: 공생활의 둘째 단원의 둘째 부분인 성전 안에서 가르치는 예수의 이야기를 말한다. 여기에서 보면 양극의 긴장 관계를 찾아볼 수 있다. 예수는 아버지의 집인 성전 안에 있으면서 모든 것을 주관하고 말씀과 행동도 자유로운 반면에, 성전 밖인 도읍에서는 유다인들의 지도자들과 대사제들이 예수를 살해하기 위해 모의하는 양극이 깔려 있다.
㈇ 22, 1-24, 53: 예수의 수난과 죽음과 승천은 공생활의 둘째 단원에서 셋째 부분으로 이 부분이 복음서 자체의 종결이고 곧 이어 사도행전이 전개된다. 따라서 원래 사도행전은 루가 복음 다음으로 이어져 나오는 것이지만 편집구조상 요한 복음서 다음에 놓았던 것이다.
4. 루가 복음서에 나타난 신학적 명제들
① 보편적 구원관: 복음서의 서언과 유년 이야기는 루가 나름의 서술이겠지만 3장부터는 대체로 마르코 복음서와 일치한다. 루가는 3장의 시작에서 세례자 요한을 언급할 때, 다른 복음서와 같이 이사야 40장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의 구절을 인용하지만, 또 그와는 다르게 이사 40, 6의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는 데까지 인용을 계속하는데 이는 구원이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는 루가의 보편적 구원관에서 나온다. 세례자 요한의 입에서 예언서를 빌어 나오는 보편주의 사상은 이미 예수 유년기의 이야기인 노인 시므온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데, “모든 백성의 빛이 되고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 된다”(2, 31-32)는 것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온 세상 모든 인류를 위한 구원이 왔음을 밝힌다.
② 성령에 대한 강조: 예수 유년기에 예수와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성령과 관련이 있다. 세례자 요한은 태중에서 이미 성령을 받았고, 성모님도 ‘하느님의 영’이 내려서 아들을 잉태하였으며,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성령을 받았다고 말한다. 즈가리야도 세례자 요한이 태어날 때 ‘찬미가’(베네딕투스)를 노래하면서 성령을 받았고, 노인 시므온에 관련해서 성령에 대한 말씀이 세 번 나온다.
예수의 유년 시기에도 그렇지만 예수 공생활에 관련해서 중요한 사람들도 모두 성령과 관계되어 있다. 3, 22에서 예수께서 기도할 때 내린 성령은 마치 기도와 응답인 것처럼 나타나고, 4, 1엔 예수께서 성령이 가득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사막으로 갔다. 또한 희년선포인 회당에서의 메시아 예수의 자기선포 순간 첫 마디가 바로 성령을 받았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처럼 루가 복음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성령의 역할이 매우 강조되고, 사도행전의 서두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을 강조하여 설명한다. 따라서 예수의 직무나 교회의 직무가 전개되기 시작할 때는 항상 성령께서 크게 움직이신다는 점이다.
③ 성령과 긴밀히 연결되는 주제인 ‘기도’: 복음서 모두가 예수의 기도하는 모습을 증언하고 있지만 특히 루가 복음서에서 특히 예수의 기도를 계속해서 강조하여 설명한다.
루가복음 3:21 사람들이 모두 세례를 받고 있을 때 예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고 계셨는데 홀연히 하늘이 열리며
루가복음 5:16 그러나 예수께서는 때때로 한적한 곳으로 물러 거셔서 기도를 드리셨다.
루가복음 6:12 그 무렵에 예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들어 가 밤을 세우시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루가복음 6:28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해 주어라. 그리고 너희를 학대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어라.
루가복음 9:16 예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뒤에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군중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루가복음 9:18 어느 날 예수께서 혼자 기도하시다가 곁에 있던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
루가복음 9:28 이 말씀을 하신 뒤 여드레쯤 지나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 가셨다.
루가복음 9:29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에 그 모습이 변하고 옷이 눈부시게 빛났다.
루가복음 11:1 예수께서 하루는 어떤 곳에서 기도를 하고 계셨다. 기도를 마치셨을 때 제자 하나가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준 것같이 저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루가복음 11:2 예수께서는 이렇게 가르쳐 주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루가복음 18:1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언제나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이렇게 비유를 들어 가르치셨다.
루가복음 19:46 "성서에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희는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 로 만들었다" 하고 나무라셨다.
루가복음 21:36 그러므로 너희는 앞으로 닥쳐 올 이 모든 일을 피하여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루가복음 22:17 그리고 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다음 "자, 이 잔을 받아 나누어 마셔라.
루가복음 22:19 또 빵을 들어 감사 기도를 올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루가복음 22:32 그러나 나는 네가 믿음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나에게 다시 돌아 오거든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 다오."
루가복음 22:40 예수께서는 그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 하시고는
루가복음 22:41 돌을 던지면 닿을 만한 거리에 떨어져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
루가복음 22:45 기도를 마치시고 일어나 제자들에게 돌아 와 보시니 그들은 슬픔에 지쳐 잠들어 있었다.
루가복음 22:46 이것을 보시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왜 이렇게들 잠만 자고 있느냐?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일어나 기도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루가복음 24:30 예수께서 함께 식탁에 앉아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나누어 주셨다.
예수는 중요한 일에 처했을 때마다 기도를 하였으며, 중요한 결단이나 새로운 직무에 직면하였을 더욱 두드러진다. 12제자의 선택에 앞서 밤새 기도하시는 예수, 변모에 앞서 기도하는 예수를 증언하는 것은 루가복음뿐이다. 십자가상에서도 “저들을 용서하십시오”(23, 34)라고 아버지께 기도하며, 돌아가실 때도 “왜 저를 버리십니까” 대신 “아버지,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라고 기도로 십자가 사건 전체를 하나의 큰 기도로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루가는 스스로 기도하는 예수가 아니라, 예수가 기도에 대해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음을 다른 복음서보다 강조한다.
④ 보편주의 사상: 공생활의 준비에는 예수의 족보가 나오고 있다(3, 23-38). 마태오 복음에선 족보가 아브라함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옴을 보이면서 예수가 이스라엘 민족의 어디에 위치하는가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루가는 예수의 근원을 아담으로 소급시켜 예수가 이스라엘 민족보다 온 인류에 속하였음을 강조한다. 이 점은 루가의 보편주의를 다시 강조함과 동시에 그 다음에도 나오는 유혹이야기와도 연결되어 있다.
⑤ 세상에 대한 교회의 관심: 루가에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세계 안에서의 교회에 관심을 둔다는 것으로 마태오가 교회의 대내적인 문제들을 주로 다루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루가에게 있어 세상은 로마 제국을 의미하는데, 이 세상은 극소수의 사람들이 많은 권력과 재산을 누리는가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아주 가난하고 아무런 힘도 없는, 극도의 대조를 이루는 곳이었다. 루가는 이런 세상을 의식하면서 엄청난 부의 집결을 악마적 현실로 보고 재산의 유혹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 예수의 설교 가운데 중요한 두 대목
- 나자렛 회당에서의 설교(루가 4, 16-30): 예수의 자기 정체 선포와 스캔들
- 평지 설교(루가 6, 20-49):
복에 대한 말씀(초기 공동체의 진복 4단과 루가와 마태오의 변용)
가난한 사람 ??
슬퍼하는 사람 ? 예수 공생활 초기
굶주리는 사람 ??
핍박을 받는 사람 ? 예수 공생활 후기
부유한 사람 ??
배부른 사람 ? 루가의 변용
웃는 사람 ?
칭찬 받는 사람 ??
온유한 사람 ??
정의에 목마른 사람 ? 마태오의 변용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 ??
예수께서 말씀하던 당시에는 실제로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을 향해 발언되었던 것을 마태오는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 정의에 굶주린 사람’이라는 식으로 내면화시키고 영성화했으며, 구약에서 여러 가지 영감을 받아 ‘평화를 이루는 사람’ ‘마음이 온유한 사람’ 등 몇 가지의 덕목을 덧붙여 하느님 나라의 공동체 안에서 실천에 옮겨야 할 여덟 개의 덕을 나열한다.
이와 달리 루가는 세계 안에 위치한 교회에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엄청난 격차와 대립의 양상을 의식하여 이 ‘복되다’라는 말의 사회적인 차원에 관심을 기울인다. 따라서 네 개의 복에 대비를 이루는 양화 넷을 부르짖으면서 현세에서 누리는 복을 경고하고 있다.
끝으로 루가는 아직도 오랜 세월을 충실히 살아가야 할 교회로서 어떻게 신앙을 지켜 나갈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 첫째, 재물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가질 것과 둘째로 믿음의 공동체이어야 할 것, 셋째로 기도의 공동체가 되어야만 다시 올 하늼의 아들과의 만남이 확실해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공동체로서도 예수와 같이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어야 하지만 특별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끊임없는 투신을 가르친다.